365일책이야기

은퇴가 가까울수록 손실에 더 조심해야 하는 건 착각이 아닙니다

서비나라 2026. 8. 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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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금액인데 손실 쪽으로 기울어 있는 저울

안녕하세요. 서비나라입니다.

IT 업계에서 25년 넘게 일하면서 여러 유행과 위기를 지켜봤습니다. 은퇴를 몇 해 앞둔 나이가 되고 보니 다시 보이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입니다. 이 책은 흔히 흥미로운 심리학 이야기로만 읽히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 다시 읽으면 다르게 읽힙니다. "손실이 이익보다 아프게 느껴지는 건 인간의 비합리성"이라는 설명은 여러 매체에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은퇴 자금을 굴려야 하는 입장에서 다시 보면, 그 설명은 절반만 맞습니다.

손실이 더 아픈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아픔이 정작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자리에서 작동한다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왜 은퇴가 가까울수록 손실이 더 아프게 느껴질까

CBS 경제연구실 '경제적 본능' 코너에서 남궁민 북칼럼니스트는 동전 던지기 실험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앞면이 나오면 150만 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잃는 게임인데, 기대이익은 +25만 원으로 분명히 유리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게임을 거절합니다. 하겠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조건을 물으면 200만~250만 원 정도를 받아야 응하겠다고 답합니다. (CBS 경제연구실 — "서울대 필독서 노벨상 수상자 주식만 하면 뇌가 고장 나는 당신에게: '생각에 관한 생각'")

"고통의 아픔이 두 배에서 [2.5배] 정도 이득의 기쁨보다 크다라는 걸 밝혀낸 겁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잃을 때의 고통이 얻을 때의 기쁨보다 두 배에서 2.5배 무겁다는 겁니다. 이 비대칭을 카너먼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설계로 설명합니다.

"야생에서는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살아남았고 우리가 바로 그 안전 추구자들의 후손이었다는 겁니다. (…) 문제는 그게 주식 투자로 오면서부터는 굉장히 힘든 원칙이 됐다는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두 영상에 나오지 않는, 제 판단을 얹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손실을 더 아프게 느끼는 심리적 반응 자체는 나이·소득과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정당화되는 것은 이 감각의 크기가 아니라, 이 감각에 따라 위험을 줄이려는 행동입니다. 위험을 줄이는 게 합리적인 이유는 손실이 아파서가 아니라 회복 시간이 짧아서이며, 이 감각은 판단의 근거가 아니라 그 판단을 실행하게 만드는 동기로 작동합니다.

30대의 손실은 앞으로 남은 근로소득으로 만회할 시간이 있지만, 은퇴를 몇 년 앞둔 손실은 그 시간이 짧거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손실 앞에서 더 조심하는 행동은 은퇴가 가까울수록 더 합리적입니다. 다만 이 조심은 위험을 줄이는 쪽이지, 이미 난 손실을 붙들고 버티는 쪽이 아닙니다 — 이 구분은 다음 장에서 다시 짚겠습니다.

그 심리적 크기가 어디까지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이렇게 짚습니다.

"사실은 한 100만 원 정도 수익[이 나]야 두 종목을 처분했을 때 아픔과 기쁨의 양이 똑같아진다는 거예요."

100만 원을 잃은 아픔과 같아지려면 100만 원이 아니라 200만~250만 원을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카너먼 책의 인용이 아니라 영상 화자가 전한 조사 결과입니다). 은퇴자의 조심이 더 합리적이라는 제 논지를 받아들이더라도, 이 정도의 비대칭한 감각까지 저절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 감각이 하필 잘못된 순간에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위험 태도가 뒤집히는 자리 — 대범한 진입, 미루는 손절

이득 앞에선 안전, 손실 앞에선 도박

앞서 정당화한 조심은 위험을 줄이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투자 행동에서 조심은 정반대 자리에서 나타납니다.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는 카너먼의 책을 개념 구조 중심으로 짚습니다. (이교수의 책과 사람 — "행동경제학의 아버지가 밝힌 인간의 비합리성 l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핵심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익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확실한 이익을 더 선호한다는 거예요. (…) 그보다는 좀 적더라도 확실한 이득을 얻는 쪽을 선택[한]다는 거죠."
"반면에 위험에 대해서는 우리는 훨씬 더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내가 얼[마]를 잃는다는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전혀 잃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에 더 걸게 된다는 거죠."

이득 앞에서는 안전을, 손실 앞에서는 도박을 택한다는 겁니다. CBS 영상이 짚는 "익절은 칼같이 하는데 손절은 못 한다"는 투자자의 습관도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조금만 올라도 확실한 이득을 챙기려고 서둘러 팔고, 손실이 난 종목은 확실한 손실을 확정하기보다 '전혀 잃지 않을 가능성'에 기대어 계속 들고 있습니다. 손절을 미루는 행동 자체가 손실 영역에서의 위험 추구입니다 — 앞 장에서 정당화한 '위험을 줄이는 조심'과는 반대 방향입니다.

구분 이득 영역 손실 영역
위험에 대한 태도 위험 회피 — 적더라도 확실한 이득을 선택 위험 추구 — 확실한 손실보다 잃지 않을 가능성에 베팅
카너먼의 설명 "확실한 이익을 더 선호한다" "전혀 잃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에 더 건다"
투자에서의 모습 조금만 올라도 서둘러 판다(익절) 팔지 못하고 계속 들고 있다(손절 회피·물타기)

따로 보면 놓치는 계산 — 조합의 함정

여기에 카너먼 책의 실험 하나를 더할 수 있습니다. 결정 1은 A(240달러를 확실히 얻는다)와 B(1,000달러를 얻을 확률 25%, 못 얻을 확률 75%) 중 고르는 것이고, 결정 2는 C(750달러를 확실히 잃는다)와 D(1,000달러를 잃을 확률 75%, 잃지 않을 확률 25%) 중 고르는 것입니다. 대부분 A와 D를 고릅니다.

그런데 두 결정을 조합해서 계산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A+D는 240달러를 벌 확률 25%, 760달러를 잃을 확률 75%입니다. B+C는 250달러를 벌 확률 25%, 750달러를 잃을 확률 75%입니다. 모든 경우에서 B+C가 10달러씩 낫습니다. 이현정 교수의 영상은 카너먼 책의 이 대목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당신은 첫 번째 선택을 하기 전 두 가지 옵션을 검토하려는 요청을 받았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친 일이 있다. 어떤 조합이 가장 좋은지 결정하기 위해 네 가지 선택의 조합들 (…) 나올 수 있는 결과를 계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카너먼 책 원문, 이현정 교수 낭독)

응답자 대부분이 A와 D를 골랐고, 계산을 통해 더 나은 조합인 B와 C를 함께 고른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카너먼은 책에 적었습니다. 투자로 옮기면, 포트폴리오를 종목별 손익으로 따로따로 보는 습관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종목을 담을 때(결정 1)는 확실한 기대값만 보고 대범하게 베팅하고, 이미 물린 뒤(결정 2)에야 그 종목 하나만 붙들고 신중해집니다. 정작 필요한 건 전체 조합을 놓고 판단하는 것인데, 그 판단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은퇴 시점이 편향을 증폭시키는 세 가지 조건

여기까지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 이 구조가 유독 세게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두 영상의 내용을 은퇴자의 조건에 대입하면 세 가지가 겹칩니다.

퇴직금-만회 압박-경력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 개의 톱니

퇴직금이라는 앵커

퇴직금이라는 생애 최대 목돈이 강력한 앵커가 됩니다. CBS 영상은 매수가가 판단의 기준점으로 굳어버리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 1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우리 머릿속에 박혀 버린다는 거예요."

룰렛 실험 등 앵커링의 다른 사례를 든 뒤, 같은 논지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10만 원에서 얼마를 더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건데 10만 원이 됐으니까 판다."

몇 년 전의 매수가가 지금 기업의 가치와는 무관한데도 판단의 기준으로 남아버린다는 설명입니다. 이 원리를 은퇴자에게 적용하는 건 두 영상에 없는 제 논지입니다만, 구조는 같다고 봅니다. 퇴직금이라는 한 번에 들어온 목돈이 그 자체로 강력한 앵커가 됩니다. "이 돈만은 지켜야 한다"는 기준이 일단 박히면, 이후의 투자 판단이 시장 상황이 아니라 그 숫자를 기준으로 흔들립니다.

만회 압박과 가용성 폭포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존자 편향·가용성 폭포와 맞물립니다. 이 압박이 크다는 전제 자체는 두 영상에 직접 나오지 않는 제 판단입니다. 다만 그 압박이 기대는 심리 기제 두 가지는 영상 근거가 있습니다.

CBS 영상은 손실을 크게 본 사람은 대체로 주변에 알리지 않고, 성과가 좋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만 돌아다니면서 '투자하면 다 번다'는 잘못된 인식이 쌓인다고 지적합니다.

이현정 교수가 소개한 카너먼의 책 내용에 따르면, 언론 보도가 대중의 반응을 부풀리고 그 반응이 다시 보도를 부풀리는 자기 증폭 구조가 있습니다. 카너먼은 이를 '가용성 폭포'라고 부릅니다. 압박이 큰 사람일수록 이 두 흐름에 쉽게 올라타, 눈에 띄는 성공 사례만 보고 그것이 반복 노출되면서 실제보다 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경력이 만드는 과신

20년 넘게 쌓은 경력이 과신의 연료가 됩니다. 카너먼 본인의 일화가 이 지점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군에서 장교 후보생을 면접하며 평가했는데, 나중에 실제 근무 성과와 대조해 보니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 면접에서는 또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습니다. 이 이론을 만들고 데이터로 직접 확인한 인지 심리학자 본인마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 겁니다.

"과신이라는 게 무엇을 작동시키느냐? 시스템 1한테 전결 도장을 주는 거예요."

한 분야에서 오래 자리 잡은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더 잘 걸립니다. 방송은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한 5, 60대 정도 한 영역에서 좀 자리 잡은 분들[이] 모이면 타협이 안 되거든요.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얘기를 해요."

경력이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되는 지점입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연령대가 노동시장에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습니다. 예전에 AI가 신입 대신 50대를 뽑는다는데,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에서 다룬 것처럼, 시장은 이 나이대의 경험을 신중하게 값을 매기는데 정작 본인은 투자 판단에서만큼은 그 경험을 과신의 근거로 씁니다.

기록하지 않은 원칙은, 원칙일까요?

두 영상이 도달하는 결론은 같습니다.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시스템 1이 튀어나오기 전에 시스템 2가 맑을 때 원칙을 정해 두라는 것입니다. CBS 영상은 기관 투자자의 사례를 듭니다.

"실제로 기관 투자자들은 15% 정도 종목이 빠지면 무조건 절반은 매도한다. 20% 빠지면 반드시 기계적으로 판다. 이런 룰이 다 있거든요."

이 수치를 그대로 따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영상에서 예로 든 특정 기관의 방식일 뿐이고, 실제 매도 기준은 기관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방식입니다.

"이런 거대한 기관들은 그런 원칙을 룰로 만들어서 (…) 매뉴얼을 다 해 놓은 다음에 (…) 무조건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내가 산 종목은 가리고 이 종목 중에 뭐가 더 내일 좋을 것이냐 원칙을 세우라고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손으로 적어 둔 몇 줄의 원칙과 붉게 하락한 차트 화면

여기에 제 직업적 관점을 하나 얹고 싶습니다. 공인전자문서센터 실무를 다뤄본 입장에서 보면, 기관과 개인의 차이는 원칙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개인에게도 나름의 원칙은 대개 있습니다. 진짜 차이는 그 원칙이 기록되어 있느냐입니다.

기관은 룰을 문서로 만들고, 그 문서가 시스템 1의 개입 없이 기계적으로 집행되도록 절차를 짭니다. 개인의 원칙은 대개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전자문서 쪽에서도 같은 자리가 문제였습니다. 전자계약 플랫폼 서비스 중단 시 리스크? 공인전자문서센터 보관 필수 이유에서 쓴 것처럼,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꺼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느냐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의 원칙은 정작 그 원칙이 가장 필요한 순간 — 손실이 나서 시스템 1이 날뛰는 순간 — 에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기록되지 않은 원칙은 그 순간 원칙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 됩니다.

거창한 시스템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언제 팔지, 어떤 상황이 오면 판단을 멈추고 정해둔 기준부터 다시 볼지를 시스템 2가 맑을 때 몇 줄로 적어 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비합리적이니까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 파는 순간 한 번은 생각하는 거예요. 어, 이거 시스템 1이 하는 거다."

결론 및 요약

손실이 이익보다 아프게 느껴지는 건 인간의 결함이 아닙니다. 이 감각 자체는 나이와 무관합니다. 다만 그 감각에 따라 위험을 줄이는 행동은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 상당 부분 합리적입니다(이 구분은 영상 내용이 아니라 제 논지입니다). 문제는 그 조심이 정작 필요한 자리 — 얼마를 넣고 어떤 비중을 가져갈지 정하는 순간 — 에는 나오지 않고, 이미 손실이 난 뒤에야 과잉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퇴직금이라는 목돈이 앵커가 되고, 만회 압박이 생존자 편향·가용성 폭포와 맞물리고, 오래 쌓은 경력이 과신의 연료가 되는 은퇴 시점에는 이 뒤바뀐 자리가 더 크게 벌어집니다.

이 글은 어떤 종목을 사고팔라거나 자산 배분 비율을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 무엇을 살지가 아니라 어떻게 판단할지에 관한 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심도 손실 난 종목을 붙들고 버티는 쪽이 아니라, 위험을 미리 줄여 두는 쪽입니다.

두 영상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처방은 원칙을 미리 정해 두고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그 원칙을 문서로 남기십시오. 머릿속 원칙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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